[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벤처캐피탈(VC) 업계가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 2018년 국내 벤처투자 총액은 사상 최대인 3조4249억원을 기록했다. 정책자금과 연기금 금융기관 등 유동성공급자(LP)가 VC에 대규모로 자금을 공급하면서다. 벤처투자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모태펀드를 비롯한 연기금과 공제회 등 다양한 기관에서 출자사업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면서 자금 모집과 투자 등 모든 분야에 활력이 붙었다. 이는 국내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전 세계가 모험투자에 빠지고 있다.

숫자로 증명되는 호황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투자조합의 신규투자금액은 3조4249억원이다. 2조3803억원을 기록한 전년과 비교하면 무려 43.8%나 증가했다. 벤처펀드 결성금액은 전년(4조5643억원)과 비슷한 수준인 4조6868억원이다. 다만 2016년과 2017년 4조원에 그쳤던 신규 펀드레이징 금액은 5조원을 넘어섰다. 단 1년 만에 1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VC들에게 쥐어졌다.

VC에 자금이 몰리면서 투자도 활발해졌다. 지난해 신규 벤처투자는 2조8000억원을 넘었다. VC의 자금은 제약과 바이오 분야에 주로 쏠렸다. 지난해 이 분야에 투자된 규모만 8417억원이다. 인공지능과 5G 기반 사업 등 ICT서비스에도 7468억원이 흘렀다. 다음으로 전통 강호인 유통 및 서비스 업종에 5726억원을 VC가 투자했다. 게임과 단순 제조업에 대한 투자는 주춤했다.

벤처캐피탈의 투자 여력 확대는 출자 활황이 맞물리면서 기반이 구축됐다. 주요 출자기관인 한국벤처투자와 한국성장금융, 국민연금 등이 벤처캐피탈 출자에 적극 나서왔다. 2015년과 2016년에는 1조원 중반 수준의 출자가 이뤄졌다. 2017년에는 2조7000억원, 2018년에는 2조원 수준의 자금을 벤처캐피탈 업계에 공급했다. 한국벤처투자는 지난해 총 1조830억원을 출자했다. 2017년에 이어 2년 연속 1조원대 실탄을 시장에 공급했다. 다음으로는 국민연금이 2700억원을 공급했다. 이외에 한국성장금융은 1933억원, 농금원과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는 각각 520억원, 840억원을 출자 약정했다.자금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펀드조합 규모도 대담해졌다. 한국투자파트너스는 5100억원 규모의 벤처조합 펀딩에 성공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앵커출자자로 참여한 리업펀(Re-up)펀드 2850억원을 결성하면서 벤처조합 대형화 시대를 이끌었다. 한투파 이외에 1000억원이 넘는 벤처조합도 속속 등장했다. 아주IB투자는 1230억원의 ‘아주 좋은 Life Science 3.0’과 1750억원의 ‘아주 좋은 성장지원 펀드’를, TS인베스트먼트는 1307억원의 ‘티에스2018-12 M&A 투자조합’을 지난해 신규로 만들었다.

업권 전문 VC 등장, 자금물꼬 방향성도 잡히나

자금이 돌면서 새롭게 투자 유치에 성공한 운용사들도 등장하고 있다. 대부분 사업에 특화된 투자를 전략으로 내세워 민간자본 출자를 끌어냈다. UTC인베스트먼트는 반도체 등 부품 분야 투자 역량을 키우면서 반도체성장펀드 전문 운용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성장금융으로부터 반도체성장펀드를 조성, 450억원의 펀드를 구축했다.

케이넷투자파트너스는 청년창업부문 3차 정시출자사업 운용사로 선정되면서 SI로 나선 유니콘 기업 ‘블루홀’을 주요 LP로 참여시키며 펀딩시장에 등극했다. SJ투자파트너스도 KB증권과 함께 ‘SJ-창조관광밸류업벤처조합’을 결성, 지난 2015년 조성했던 관광산업 특화 펀드를 운용하며 문화체육관광부, 하나투어 등 LP들의 이목을 끌었다.

IPO수의 정체는 공모주 시장 한파가 불어오면서 VC들이 공모를 늦추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일부 대형 VC를 제외하면 대부분 VC들은 시장 정체기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 미레에셋벤처투자 상장을 기반으로 시장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상장한 VC의 분위기는 차갑다. 린드먼아시아인베스트먼트는 주가는 공모가 6500원 대비 10%가량 빠졌다. 상장초창기에는 30% 이상 주가가 내려가며 시장 기대감을 짓눌렀다. SV인베스트먼트는 공모가 7000원과 비교하면 40% 가까이 하락했다. 현재 회복세지만 속도는 더디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공모주시장 자체가 침체지만 VC업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기관에 팽배하다”면서 “상장 이후 기대감도 줄어든 데다 실질적인 수익성에 대해 의심하는 투자자가 많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미래에셋벤처투자를 포함한 KTB네트워크, 네오플럭스 등 대형 VC들이 상장을 미뤘다.

다만 금융위원회가 VC도 비상장기업 투자 전문회사(BDC)를 운용할 수 있도록 허가할 예정이다. 그간 정부에서 현행 자본시장법상 근거를 기반으로 VC의 BDC 운용을 제한해왔다. BDC는 상장을 통해 모집한 자금으로 스타트업이나 코넥스 기업 등에 투자할 수 있는 SPC다. BDC가 허용된다면 비상장기업이 공모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IPO 필요성도 떨어진다. VC 한 심사역은 “공모로 자금을 조달한다면 주가 관리에 부담이 적어진다”면서 “하반기 IPO를 노리는 VC를 포함해 BDC를 상당히 선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VC투자규모는 글로벌 기준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세계적인 회계·컨설팅 기업인 KPMG 인터내셔널이 발간한 보고서(Venture Pulse Q4 2018)에 따르면 2018년 VC 투자액은 총 2540억달러로 2017년(1740억달러) 대비 약 50% 증가했다. 미국을 포함한 미주지역과 유럽, 아시아 등 전 지역에서 연간 VC 투자액이 사상 최고 수준에 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아시아 지역 VC시장도 활발하다. 김이동 삼정KPMG 전무는 “아시아 기업에 대한 VC 투자도 2018년 935억달러로 전년(652억달러) 대비 40% 증가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면서 “2018년 4분기에는 중국의 유니콘 기업 바이트댄스와 인도의 음식배달기업 스위기, 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 업체인 도코피디아, 동남아 최대 차량공유업체인 그랩 등이 10억달러 이상 자금조달에 성공하며 다양한 VC 투자가 성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거래량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4분기 VC 투자액은 총 645억달러로 사상 두 번째로 높은 분기별 투자액을 보였으나, 거래량 측면에서는 3048건이 이뤄져 2012년 3분기 이후 25분기 만에 최저 거래량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