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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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사모펀드 운용사가 제약·바이오업계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성장잠재력이 높은 시장에서 영향력 확대를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신약개발은 많은 시간과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연구개발(R&D)자금 확보가 가장 중요해 제약·바이오기업은 사모펀드의 러브콜을 적극 지지하는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바이킹글로벌인베스터스·베인캐피탈 등 글로벌사모펀드 등이 제약·바이오기업 투자처 발굴에 매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임상시험수탁대행업체(CRO)를 소유하고 있거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 제약·바이오업체는 대부분 각자 특화된 분야가 있어 하나의 기업만으로는 가치를 눈에 띄게 성장시키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글로벌사모펀드가 제약·바이오업체에 투자해 얻는 예상 수익은 기대 이상일 가능성이 크다. 제약·바이오기업이 R&D를 강화하면 이들이 미리 지분을 확보한 CRO에 수익이 돌아가는 이유에서다. CRO는 단순 데이터 관리부터 임상시험 설계·컨설팅·데이터 관리·임상시험 수행까지 임상시험과 관련된 업무를 지원하는 업체다. 즉 제약·바이오업체가 R&D를 늘릴수록 CRO 수익도 증가한다. 임상시험이 가장 활발한 미국시장에서 CRO가 차지하는 비중은 55%로 잠재력도 크다.

◆‘유망’ 업체에 직접 투자
최근 제약·바이오기업에 투자한 KKR·베인캐피탈은 CRO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KKR은 2013년에 ‘PRA 헬스 사이언스’를, 베인캐피탈은 2007년에 ‘퀸타일즈’ 지분을 획득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바이오업체가 CRO에 임상시험을 수탁하면 원하는 가격 내에서 환자를 모집할 수 있고 임상시험 전 과정도 CRO가 대신 진행하기 때문에 R&D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며 “최근 제약·바이오기업이 R&D에 집중하면서 임상시험 수탁을 늘리는 추세에 따라 제약·바이오업체에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모펀드의 투자가 늘어나면서 제약·바이오 관련 시장도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모펀드가 투자한 제약·바이오업계의 성과가 나타나면 투자배당금을 다른 기업에 쏟아, 선순환하기 때문이다. 펀드 만기 전에 기업 가치를 높여 되팔아야 하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을 추가 인수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면서 사모펀드들은 글로벌 유망 바이오벤처에 우선 접근할 수 있는 통로 확보에 나서고 있다. KKR과 바이킹글로벌인베스터스는 지난달 바이오벤처기업 ‘브릿지바이오’에 2억9920만달러(약 3370억원)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이번 투자는 앞서 브릿지바이오에 1억3500만달러(약 1520억원)를 투자했던 사모펀드 AIG‧아이즐링 캐피탈‧커머런트 캐피탈에 이어 두번째다.

브릿지바이오는 올해 펀드자금를 받아 업계 선두권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로 자사 파이프라인(신약후보물질) 12종 개발을 앞당기고 있다. 이들이 집중하는 분야는 항암제‧희귀질환치료제 등이며 미충족 의료수요가 높아 미래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브릿지바이오는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설립된 바이오기업으로 아일랜드 다국적제약사 샤이어와 미국제약사 렉시콘 등과 협업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바이오벤처 성공사례가 잇따르면서 의약품을 직접 연구·개발하는 것과 별개로 사모펀드의 투자로 기대되는 잠재 가치는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모펀드♥제약사 ‘합작회사’도
사모펀드가 다국적제약사와 협력해 설립된 합작회사도 있다. 사모펀드의 자본력과 제약사의 기술력이 합쳐지면 장기적으로 큰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랙스톤은 다국적제약사 노바티스와 협력해 ‘앤토스 테라퓨틱스’를 지난달 미국 보스톤에 설립했다. 블랙스톤은 자회사 라이프사이언스로부터 2억5000만달러(약 2800억원)를 투자받아 노바티스와 심혈관질환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노바티스는 앤토스의 일부 지분을 받고 파이프라인을 이전했다.

이 같은 추세는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베인 캐피탈은 2018년 10월 다국적제약사 화이자와 ‘세레벌 테라퓨틱스’를 미국 보스톤에 창립했다. 베인 캐피탈은 자회사 베인 캐피탈 프라이빗 이쿼티·라이프 사이언스로부터 3억5000만달러(약 400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받았다. 화이자는 파킨슨병·알츠하이머병·뇌전증·조현병 등 중추신경계질환치료제 파이프라인을 세레벌 테라퓨틱스로 이전, 개발에 착수했고 향후 진단사업까지 진출할 예정이다.


사모펀드의 국내 제약업계를 향한 러브콜도 뜨겁다. 글로벌 대형 사모펀드들이 국내 시장에 대거 참전하는 모양새다. 

베인캐피탈은 2017년 6월 처음으로 국내 제약‧바이오업체를 인수했다. 보톡스‧필러 기업 휴젤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9300억원을 투자했고 이는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성장성’에 투자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휴젤의 지난해 매출액은 1823억9200억원으로 전년 1820억8500만원보다 성장했다. 현재 베인캐피탈 소속 실무자가 휴젤에서 감사 업무, 컨설팅 등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베인캐피탈에 이어 칼라일·CVC캐피탈 등 굵직한 사모펀드와 한국콜마도 CJ헬스케어 인수를 시도했다. 한국콜마도 당시 미래에셋프라이빗에쿼티·H&Q코리아·스틱인베스트먼트 등 사모펀드과 협력했다.

한편 저성장기조에도 불구하고 제약·바이오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수출입은행 등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글로벌 의약품시장 규모는 약 1조1000억달러(약 1260조원)로 반도체(400조원)와 화장품(500조원) 시장을 합친 것보다 크다. 고령화 등으로 글로벌 의약품시장은 오는 2021년 1조4700억달러(약 1656조원) 수준까지 꾸준히 성장할 전망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최근 사모펀드의 대규모 투자가 늘면서 제약·바이오기업이 R&D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며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의 고질적 문제인 낮은 R&D 투자에도 훈풍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3호(2019년 3월12~1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