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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창업 꿈꾼다면 처음부터 세계시장 노려라"

이상덕 기자
이상덕 기자
입력 : 
2019-05-13 18:00:35
수정 : 
2019-05-13 2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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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창업재단 `디캠프` 박병원 초대 이사장

철저한 자율권 준 디캠프
7년만에 100社 투자 결실

혁신성장이 성공하려면
국가 총동원체제 전환해야
대기업-중소기업 상관없이
잘할수 있는 기업이 나서야
사진설명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은 국제적 시각을 갖고 미국이나 중국 시장 진출을 전제로 창업했으면 합니다. 네이버나 카카오가 미국에서 창업을 했다면, 지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을 해봅니다." 정통 정책기획 관료로서 재정경제부 제1차관, 우리금융지주 회장,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한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 그에게는 수식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국내 최대 규모 창업재단인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를 세운 초대 이사장이라는 타이틀이다. 매일경제신문이 오는 23일 재단 설립 7주년을 앞두고 서울 강남구 선릉로에 있는 디캠프 선릉센터에서 박 회장을 인터뷰했다.

박 회장은 청년들에게 창업을 주저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 인적 자원 순위 2위 국가"라면서 "청년들에게 공무원의 길이 아닌 창업의 길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은 정보기술(IT)이 발달해 글로벌 테스트베드 시장으로 성장했다"며 "이스라엘의 모태펀드인 요즈마펀드가 한국 스타트업을 주목할 정도"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박 회장은 "미국이나 중국에서 창업하는 청년들의 꿈은 구글, 애플, 알리바바, 텐센트에 팔 수 있는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라며 "이익을 실현하고 또 다른 사업에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이유로 한국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한다면 국가 경제에 굉장히 크게 기여하는 것"이라며 "한 나라가 혁신 성장을 이루려면 스타트업은 물론 정부,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먼저 혁신할 수 있는 주체가 혁신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혁신 성장을 이루려면 '국가 총동원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때로는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천문학적 규모의 기술개발 투자를 퍼부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할 수 있는 자를 못 하게 막고 능력이 부족한 자가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다리는 방식은 잘못된 규제로 이어진다"고 꼬집었다. 그는 "글로벌 경쟁 시대에는 기업 규모를 떠나 누구든지 먼저 할 수 있는 자가 먼저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며 "우리 경쟁 상대는 전 세계 공룡기업들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역량이 증명된 기업들을 막아서는 결코 성장이라는 고지를 선점하지 못할 것"이라며 "현재는 정부가 쓰는 복지, 창업 지원, 일자리 창출 예산을 모조리 모아서 투자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 같은 철학을 가진 박 회장 주도로 설립된 디캠프는 현재 직접 투자 기업 100곳 이상, 간접 투자 기업 1000곳 이상에 달하는 활동을 벌일 정도로 스타트업 허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는 디캠프 성공 배경에 대해 "은행연합회장 재직 시절 창립했는데, 정부나 은행으로부터의 간섭을 배제하고, 의사결정을 최대한 빨리 진행시킬 수 있는 자율권을 보장해 줬다. 디캠프는 이러한 자율을 바탕으로 다양한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했고 지금의 디캠프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기관에서 해오던 방식으로 보고와 규율 등을 적용하면 결과보다는 과정에 매몰될 수 있다"며 "디캠프가 하려는 일은 기존 세대를 보완하거나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내는 창업가를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직 자체가 기존 세대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현재 벤처 지원 생태계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그는 "한국의 창업 환경은 투자할 만한 스타트업보다 지원 프로그램이 더 많은 공급 과잉 상태가 됐다"면서 "2022년까지 4년간 12조원 규모의 스케일업 전용펀드가 조성되는데 정부 지원금을 받으려는 '좀비 기업'과 이를 중개하는 브로커가 더욱 기승을 부릴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박 회장은 "돈을 벌고 세금을 낼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에 자금이 흘러가는 것이 맞는다"면서 "디캠프에서 최대 3억원의 직접 투자를 받거나 최장 1년의 입주 기회를 얻으려면 매달 10대1의 경쟁을 뚫고 데모데이인 디데이 본선에 올라가도록 한 것은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디캠프를 졸업한 업력 5년 미만 스타트업들 생존율이 86%가 넘는 것도 경쟁 프로세스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정부 역할에 대해 "우리나라 모태펀드가 출자한 벤처캐피털 펀드의 존속 기간은 7년이지만, 미국 펀드의 존속 기간은 14.7년으로 우리나라의 두 배"라면서 "스타트업 성장을 위해 펀드 존속 기간이 늘어날 수 있도록 공모형 벤처투자펀드에 대한 세제 혜택을 주는 것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투자는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세제혜택 등으로 장기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 회장은 "영국 정부는 '디지털 서비스 설계 원칙' 10계명을 만들고 '정부는 정부만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는 'Do less(덜 해라)'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도 이러한 원칙에 입각해 부처별로 시행하고 있는 창업 지원 정책이 민간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지 사안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박 회장은 규제 혁파가 덜 되고 있는 데 대해 "모든 규제의 배후에는 기득권들의 저항이 있다"면서 "원격의료처럼 다른 나라에서 하는 규제 혁파를 우리나라에서는 못한다면 희망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상덕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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