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제강국으로 가는 선제적 투자, ‘2020 예산안’

안일환 |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동화는 동화일 뿐이다. 선진국들은 토끼처럼 잠들지 않는다. 빠른 것은 물론 성실하기까지 하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 국민·기업·정부의 노력으로 일본을 어느 정도 따라잡았나 싶었는데 아직 갈 길이 멀었으니 말이다. 특히 이번 수출규제 국면에서 우리 산업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소재·부품·장비의 자립화 수준이 가장 큰 걱정이다. 거북이처럼 꾸준하게 걸어가면 지금처럼 앞으로 나아가기야 하겠지만 경주를 이길 수는 없다. 더구나 미·중 무역갈등의 장기화 조짐과 글로벌 경기하강 움직임 등에서 보듯이 경기장 상황도 우리편이 아니다.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정부 예산안도 마찬가지다.

[기고]경제강국으로 가는 선제적 투자, ‘2020 예산안’

정부가 최근 국회에 낸 ‘2020년 예산안’은 경제여건에 대한 이런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 예년과 크게 다르다. 가장 큰 특징은 우리 재정이 감당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한 확장적으로 편성한 점이다. 일시적 적자를 감내하면서라도 돈을 푼 만큼 성장과 세입을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특히 연구·개발(R&D) 예산 증가율이 17.3%로, 올해 증가율(4.4%) 대비 4배나 된다. R&D 예산이 두 자릿수나 늘어난 것은 최근 10년 이래 처음이다. 산업·중소기업 분야 예산 증가율은 이보다 더 높아 무려 27.5%다. 이들 분야가 혁신성장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R&D 및 산업·중소기업 분야의 연평균 증가율이 각각 2.1%와 3.5%였던 점을 감안하면 드라마틱한 변화다. 원천기술과 산업경쟁력에 대한 현 정부의 강한 의지가 이번 예산안에 집약돼 있는 셈이다.

특히 일본 수출규제 대응, D.N.A+BIG3, 혁신인재 및 선도사업 투자 확대, 창업벤처·투자 등 4대 중점 분야에 16조원을 편성했다. 이는 전년 대비 50% 수준 증액한 규모이다. 첫째로,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한 소재 부품 장비의 자립화에 2조1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대규모 R&D와 실증테스트베드 확충 등에 집중 투자하여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100개 핵심품목의 공급을 조기에 안정시킬 계획이다. 둘째, 이른바 경제 D.N.A.라고 불리는 데이터·네트워크(5G)·AI(인공지능) 분야와, BIG3로 불리는 시스템반도체·바이오헬스·미래차에 4조7000억원을 투자한다. 셋째, 혁신인재 양성과 8대 선도사업 등에 대한 투자도 3조7000억원을 편성했다. 이를 통해 AI 등 혁신산업 및 주력산업 분야에 필요한 핵심인재를 내년 4만8000명, 향후 5년간 23만명을 양성할 계획이다. 스마트 공장 보급, 원예·양식·축산 등 스마트팜 혁신거점 확대 등도 추진한다. 마지막으로 창업 및 벤처 분야에 내년 예산 5조5000억원을 배정했다. 모태펀드에 1조원을 출자하여 벤처기업에 2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자금을 공급하고, 스케일업을 위한 자금 지원도 확대한다. 이를 통해 2018년 연간 3조4000억원 규모였던 벤처투자가 2020년 4조3000억원(추정) 이상으로 확대되는 등 어렵게 되살린 제2 벤처붐의 불씨를 큰불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이러한 혁신투자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더욱 강건히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핵심 소재·부품·장비 등에 대한 자립화 수준을 높여 수입의존도를 낮추고, 글로벌 파고를 견뎌내는 체력을 키울 것이다. 아울러 D.N.A+BIG3 산업에 대한 R&D, 인재, 자금 등 선제투자는 혁신을 불러올 첫번째 도미노가 되어 산업 전반으로 혁신을 파급시키고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초석이 될 것이다. ‘경제강국’을 목표로 한 내년 예산안이, 경제안보를 위한 경쟁에서 우리 경제주체들이 신발끈을 조이고, 전속력으로 달리고, 결국 이기도록 돕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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