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김삼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원장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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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환경의 외형적인 발전

대한민국의 창업환경은 여러 부분에서 큰 발전을 이뤘다. 스타트업 신설 법인, 각종 인프라, 투자 환경, 창업에 대한 인식 등 많은 분야가 성장했다. 특히 모태펀드의 확대로 인해 벤처투자 규모는 2016년 1조 6,729억 원에서 올해에는 4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급속히 커지고 있다. 

또한, 창업자들을 위해 창업진흥원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서 제공하는 창업패키지 시리즈, 청년창업사관학교 등 자금지원과 멘토링·개발공간까지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고 있는 각종 지원프로그램까지 추가하면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도 창업 인프라가 부족하지 않은 상황이다.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행정절차도 상당히 간소해졌다. 법인을 설립하려면 이전에는 온갖 서류 준비와 복잡한 과정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제는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법인 등록을 할 수 있다. 세금 납부 역시 홈택스 시스템으로 법인세·부가가치세 등 각종 세금 납부 방식이 전산화되면서 세무 관련 지식이 많지 않아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됐다. 이처럼 창업자를 위한 대한민국의 행정 시스템은 외형적인 발전을 이뤄 확실히 투명하고 신속해졌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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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에 묶인 스타트업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청년들의 창업률은 굉장히 저조하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대학졸업생의 8%, 63만 7천 명이 창업을 선택하는 반면, 우리나라 대학 졸업생은 0.8%, 4,740명만 창업을 선택하고 있다. 여기에 대기업 취업 경력용으로 창업한 경우의 허수를 제거하면 진짜 창업을 선택한 대학생 수는 더욱 낮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청년들이 창업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창업을 통해 수입을 얻고 더욱 발전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복잡한 행정절차나 부족한 인프라 그리고 부패한 관료들의 부당한 요구 때문에 창업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는 창업의 성공 가능성이 보이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장애물이다. 

대한민국 창업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규제에 있다. 2019년 8월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등 국내 스타트업 관련 기관들이 발표한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스타트업코리아’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누적 투자액 기준 상위 100개 스타트업 중 31 곳은 각종 규제로 인해 국내 사업이 어렵다고 한다. 

빅데이터 기반 신용평가사인 ‘위캐시’와 승차공유 ‘그랩’ 및 ‘올라’, 블록체인 업체 ‘블록원’ 등 13곳은 국내 사업이 불가능하고, 숙박 공유 ‘에어비앤비’와 신용평가 핀테크 ‘크레디트카르마’ 등 18개는 ‘제한적 가능’으로 평가됐다.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창업에 나서 성장하다가 결국 각종 규제 때문에 사업을 접게 되는 과정은 비슷하다. 첫 번째,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물론 사업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사업 아이템이 법규나 지침 등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알아보지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라서 어떤 규제에 위반될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두 번째, 사업이 입소문을 타고 회사가 성장하면서 주변에 알려지고 규모가 커지면 기존의 비슷한 제품을 제공해온 업체들이 불법이라며 반발한다. 세 번째, 담당 공무원들은 신산업에도 기존 규제를 확대해석해서 적용하는 ‘행정 관성’이 발동한다. 네 번째, 이를 극복하지 못한 상당수 기업은 사업을 접거나 해외로 생산 설비를 이전한다.

동남아시아에서 ‘타다’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해서 성공한 ‘엠블랩스’, 국내에서 농어촌 빈집을 민박으로 운영하다 불법이 된 ‘다자요’와 달리 일본에서 객실 4,500개를 운영할 정도로 성장한 국내 스타트업 ‘H20호스피탈리티’, 수제맥주 키트를 개발했지만 규제 때문에 외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게 된 ‘인더케그’까지, 규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의 소식은 끊임없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스타트업에 쉽게 뛰어들겠는가? 

 

스타트업은 정부의 눈먼 돈보다 규제개혁을 원한다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경쟁 관계인 기존 산업과 충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문제는 정부가 양자 사이에서 갈등을 조정하며 자연스럽게 산업구조를 전환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는 눈먼 돈을 제공하는 것보다 조속한 규제 개혁과 갈등 조정 능력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각종 자금, 사무공간, 멘토링 등만 제공하려고 할 뿐 갈등해결과 규제개혁이라는 본질적인 역할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정부의 각종 규제에 손발이 묶인 우리 스타트업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멀리서 보면 각종 자금 지원 등으로 희극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규제에 발이 묶인 비극이다. 

최고의 창업정책은 규제개혁이다. 정부의 각종 자금지원, 멘토링, 행정 및 공간 지원도 규제 개혁에 비견될 수 없다. 국회는 입법과정에서 불필요한 규제를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정부도 시행령 등을 통해 각종 규제를 만들거나 사실상 법규나 다름없는 가이드라인을 남발하는 탁상행정을 멈춰야 한다. 말로만 네거티브 규제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의 철학이 바뀌어야 우리 스타트업의 미래를 밝힐 수 있다.


김삼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원장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김삼화 소위원장(바른미래당)

제27회 사법시헙에 합격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을 지냈다.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여성가족위원회 위원, 국민의당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제20대 국회의원으로 바른미래당 강남병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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