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기올릭스 최고경영자,성균관대화학과 교수, 포항공과대 화학과 조교수, Cornell University 생화학 박사, KAIST 화학과 학사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이동기
올릭스 최고경영자,성균관대화학과 교수, 포항공과대 화학과 조교수, Cornell University 생화학 박사, KAIST 화학과 학사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암이나 당뇨 등을 일으키는 유전자의 발현을 사전에 차단해 질병을 막을 수 있다면 어떨까.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이미 상용화된 기술이다. ‘RNAi(RNA interference·RNA 간섭)’로 불리는 이 기술은 DNA에 저장된 유전 정보를 전달해 단백질을 생성하는 RNA를 이용해 문제 유전자의 발현을 막는다. 이를 통해 기존 의약품으로 치료가 어려웠던 난치성 질환에 대한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 2018년 미국 바이오 기업 앨라일람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세계 첫 RNAi 치료제 판매 허가를 받으며 이 첨단 치료제의 상용화 시대가 열렸다.

RNAi는 바이오 산업의 블루오션이지만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해 진입 장벽이 높다. 실제 기술 개발에 뛰어든 기업은 손에 꼽는다. 몇 안 되는 RNAi 원천기술 보유 바이오 기업 중 한국 기업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바로 올릭스다.

이동기 올릭스 창업자 겸 대표이사는 2004년 포항공대 조교수를 시작으로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 등 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RNAi 원천기술 개발에 주력했고 자가전달 비대칭 siRNA라는 독창적인 기술을 개발했다. 그는 진입장벽이 높은 기술력을 보유해야 바이오 벤처 창업이 성공할 것이라 믿었다. 이 대표는 2010년 같은 연구실 연구원과 함께 둘이 단출하게 회사를 차렸다. 신약 개발 회사의 높은 리스크 탓에 투자 유치가 어려웠다. 혹독한 겨울과 긴 터널을 묵묵히 지나 온 올릭스는 어느덧 직원 50여 명을 둔 기업으로 성장했고 설립 8년여 만에 기술특례로 코스닥시장 입성에도 성공했다. 지난해 3월에는 프랑스 바이오 기업과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하며 성장의 액셀을 밟고 있다.

올해를 기점으로 임상시험이 속도를 내면서 성과가 가시화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올릭스는 RNAi 기반으로 비대흉터, 탈모, 황반변성, 망막색소변성증, 특발성 폐섬유화, 신경병성통증, 간섬유화 등 10개 난치성 질환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올해 2분기 황반변성(OLX301A)에 대한 미국 1상 임상시험 계획을 신청하고, 비대흉터(OLX101) 치료제에 대한 미국 2상 임상시험 계획을 신청할 예정이다. 황반변성 치료제는 지난해 3월 프랑스 바이오 기업 테아(Thea)에 유럽 판권에 대한 기술 이전 계약(800억원, 계약금 27억원)을 체결했다. 하반기에는 망막섬유화(OLX301D) 임상 1상 계획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1월 9일 경기 수원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이동기 올릭스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기술 격차가 크지 않은 핵산 치료제 개발을 통해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이야기했다.


올릭스를 창업하게 된 계기는.
“앞서 2002년 툴젠에 잠시 연구원으로 있었는데 그곳에서 일하면서 나중에 바이오 벤처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됐다. 이후 2004년 포항공대 화학과 조교수로 시작해서 지금은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데, 재직하면서 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 원천기술 개발에 노력을 쏟아부었다.”

RNAi를 핵심 기술로 정한 이유가 있나.
“국내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신약 회사가 나오기 위해서는 일단은 독자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이미 형성된 시장이 아닌 이제 막 시작하는 시장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통 신약 개발이라고 하면 1세대, 2세대인 저분자화학물, 항체 치료제 얘기를 하는데 3세대 핵산 치료제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시작하던 당시 전 세계적으로 시장의 초입 단계에 있는 분야였다. 항체 치료제는 역사가 30년 정도 되는데 현재 100조원 규모의 시장으로 커졌다. 핵산 치료제라는 3세대 기술 플랫폼도 앞으로 항체 치료제만큼 커나갈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또 지금은 초기니까 전 세계적으로 격차가 크지 않다. 올릭스도 시장과 함께 글로벌하게 커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핵산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투자 유치에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회사를 창업하고 첫 투자를 받기까지 4년 6개월이 걸렸다. 당시 바이오벤처에 대한 붐이 지금처럼 일지 않은 상태였고 특히 신약 회사에 대한 투자를 벤처캐피털(VC)조차 꺼리는 상황이었다. 호흡이 길고 리스크가 크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투자받기 힘들었는데, 그 기간을 나는 ‘고난의 행군’이라 표현한다(웃음). 다행히 2014년 이후 성장사다리펀드 등 정부의 벤처 지원 정책이 많이 생겼다. 올릭스도 그 혜택를 받았다. 그때부터 신약 개발에 대한 투자도 활발해졌다. 그때까지 버티면서 내실을 다지는 과정을 거친 것이 좋은 투자를 받고, 투자금을 바탕으로 실제로 파이프라인을 개발하는 계기가 됐다.”

첫 투자를 받기 전까지 어떻게 버텼나.
“첫 투자를 받기 전까지 허리띠를 졸라매고 1만원의 지출도 직접 관리했다. 직원도 5~6명의 연구원이 전부였고 정부의 연구비 지원금 2억~3억원 덕분에 겨우 회사를 유지했다.”

아끼는 것만이 답은 아닐 터.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기본적으로 바이오벤처 기업은 굉장히 탄탄한 기술력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중요한 것은 현실적인 사업 전략이다. 제약·바이오 기업은 연구자 출신이 창업하는 케이스가 많다. 연구자들은 기술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내 기술이 최고이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이다. 이를 극복하고 개발전략을 가능한 한 현실적으로 짜는 것이 중요하다. 머리는 구름 위에 있고 발은 땅을 딛고 있달까. 머리로는 높은 수준을 생각해야 하지만 전략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올릭스는 어떤 현실적 목표를 세웠나.
“제약 회사의 임상시험은 실패할 가능성이 늘 열려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의 프로그램이 실패해도 다른 프로그램이 남아 있어 회사 전체적으로는 큰 손실을 보지 않는다. 여러 개 프로그램을 가져가고, 상대적으로 조기에 기술 이전을 하면서 위험을 분산하고 상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기술 이전 없이 끝까지 제약회사가 임상을 진행할 경우 성공하면 그 결실이 매우 크겠지만, 실패했을 때 그 타격도 온전히 다 짊어져야 한다. 기술 이전을 통해 체력과 역량을 쌓으면 3상까지 나갈 수 있다.”

한국에서 신약 개발 사업을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이 있다면.
“기술적으로 생소한 분야다 보니 국내 규제 기관에서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바로 유럽이나 미국 FDA를 통해서 그쪽에서 개발을 진행하는 전략으로 가고 있다. 바이오, 특히 신약 바이오 분야는 결국 글로벌 마켓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시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규제 기관이 선진 규제 기관의 수준과 맞춰야 국내에서 시작하는 기업이 좀 더 편하게, 쉽게, 빨리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해외 신약 허가 당국은 어떤 점이 다른가.
“FDA는 일단 신약 허가 관련 인력의 과학적 지식 수준이 높고, 그 규모도 상당히 크다. FDA 신약 허가 심사관이 학회를 열고 최신 기술을 배울 정도로 열의가 높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 우리나라 규제 기관은 선진국에서 허가를 받은 약은 쉽게 허가를 내주는데, 그렇지 않은 새로운 약에 대해서는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신약은 현재 치료 방법이 없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국내에서 좋은 약품이 개발되고 있는데도 외국에 나가서 임상을 거치고 한참 뒤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야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신약 허가규제를 완화하자는 것인가.
“규제를 풀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의 규제 수준에 맞춰달라는 것이다. 제대로 했을 때 제대로 됐는지 평가를 해서 좋은 물질이 정확하고 빨리 임상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는 뜻이다.”

한국에 신약 개발 인력이 부족한데 어떻게 해결하나.
“국내에도 유능한 인력이 있지만 규모가 작은 회사가 그런 인력을 유치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올릭스를 상장하자마자 제일 처음 한 일이 미국 보스턴, 샌디에이고에 미국 법인을 설립한 것이다. 미국 제약·바이오의 양대 축인 이곳에는 경험 있는 인력풀이 많다.”

올릭스의 경쟁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기술력이다. 우리가 확보한 기술력은 글로벌 선두주자와 비교했을 때 그 격차가 그렇게 크지 않고, 핵산 치료제라는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초입에 있다. 그곳에서 올릭스가 글로벌 플레이어 중 하나로 인정을 받고 경쟁하고 있다. 우리도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뜻이다. RNAi 같은 경우도 원천특허 이슈가 있었고 우리 역시 나름의 원천특허를 보유하고 있어서 초기부터 독자적인 개발을 할 수 있었다.”

올해 기대가 크다.
“임상 관련해서 진도를 뺄 부분이 있다. 결국은 플랫폼 기술이라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 붕어빵 틀로 붕어빵을 찍어내는 것과 우리 기술이 비슷하다. 신약 핵산 물질은 거의 고정돼 있고 어떤 질환, 어떤 유전자를 타깃으로 하느냐에 따라 염기서열만 바뀌는 것이다. 안과면 안과, 신경계면 신경계, 특정 장기에 결정이 되면 무궁무진한 신약개발이 가능하다.”

향후 기업 가치가 얼마나 커질 것으로 전망하는가.
“유사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미국 회사의 시가총액을 봤을 때 올릭스는 지금 시총보다는 최소한 수배 이상은 증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얼마나 빨리 달성할지는 개발 일정, 임상시험 진도 등이 계획대로 진행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은 잠재력 측면에서 우리는 저평가 돼 있다. 그런 저평가를 극복하기 위해서 더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 10년을 봤을 때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우리의 비전은 한국의 리제네론이 되겠다는 것이다. 리제네론은 설립된 지 30년쯤 됐는데, 초기에 교수 두 명이 창업을 했고, 플랫폼 기술을 바탕으로 각종 블록버스터 신약을 개발해서 판매했고 지금은 시총 50조원 규모의 글로벌 빅파마로 자리매김했다. 10년 내에는 황반변성, 흉터 치료 같은 신약이 시장에 나와서 환자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국내에서 독자 개발 기술로 글로벌 신약 기업이 나온 선례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


intro

한국에서 설립 10주년을 맞는 기업은 특별하다. 창업 후 3~7년 차에 접어들면서 자금 조달 등의 어려움으로 도산 위기에 빠지는 이른바 ‘데스밸리’(death vally·죽음의 계곡)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이 기간에 70%의 기업이 사라진다. 한국의 데스밸리 생존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7개 주요 회원국 중에서도 최하위다. 조선비즈 창간 10주년을 맞아 ‘이코노미조선’은 올해로 열 돌을 맞는 동갑내기 기업을 차례로 만나봤다. 열 돌 기업들은 제약·바이오부터 게임·의류·항공·부품 등 다양한 업권에 포진해 있었다. 저마다의 사정은 다르나 열 돌 기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나름의 생존 전략으로 역동의 10년을 꿋꿋하게 버텨왔고 앞으로의 새로운 10년을 설계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인한 생존력을 보여준 이들을 통해 한국 기업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