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부 ‘스마트대한민국펀드’ 출자 요청에 시중 5대 은행 난색
유사 정책펀드에 이미 중복투자… 정책펀드 동원령에 불만 해석도

[민주신문=서종열 기자]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에서 열린 ‘디지털 강국을 향한 풀스윙 스마트대한민국펀드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중소벤처기업부

"출자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정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가 추진 중인 6조 원 규모의 '스마트대한민국펀드'(이하 스마트펀드)가 좌초될 위기에 몰렸다. 

중기부가 출자를 요청했던 시중 5대 은행(신한·국민·하나·우리·농협)이 중복투자를 이유로 출자에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중기부는 "은행 참여는 자율적"이라며 "은행들의 출자와 관계없이 다른 곳에서 투자금을 받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권을 대표하는 시중 5대 은행들이 출자자에서 빠지게 되면서 중기부가 당초 목표로 세웠던 6조 원대 대규모 정책펀드 구성은 요원해질 것으로 보인다. 

 

◇ 중복투자 이유로 투자 난색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 5대 은행들은 중기부의 스마트펀드에 투자금을 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수년 전부터 벤처투자 활성화와 중소기업 지원 등을 위해 조성된 정책펀드에 자금을 투자한 상황에서 새로운 정책펀드 참여는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스마트펀드는 중기부가 당초 1조 원 규모로 조성하겠다는 스타트업 펀드다. 

중기부는 민간에서 6000억 원을 출자받기로 방침을 정하고, 5대 은행에 각각 200억 원씩 총 1000억 원의 출자를 요청했다. 하지만 은행들이 중복투자를 이유로 출자요청을 거부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출자자 모집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에서 열린 ‘디지털강국을 향한 풀스윙 스마트대한민국펀드 출범식’에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에서 일곱째)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영민 한국벤처투자 대표이사, 정윤모 기술보증기금 이사장, 서승완 무신사 부대표, 배동근 크래프톤CFO, 오용진 신세계인터네셔널 부사장, 권오섭 엘앤피코스메틱 회장, 박영선 장관, 박세리 바즈인터내셔널 대표, 박상진 네이버 CFO, 도기욱 넷마블CFO,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이사, 서승원 노란우산공제회 이사장, 정성인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 ⓒ 중소벤처기업부

은행들이 중기부의 출자 요청에 난색을 표한 것은 스마트펀드의 투자목표가 현재 은행들이 이미 투자를 단행한 다른 정책펀드들과 중복되기 때문이다. 

실제 신한은행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조성한 '기술혁신전문펀드'에 이미 1000억 원을 출자했다. 여기에 신한은행의 지주사인 신한금융지주 역시 금융권 최초로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신한 퓨처스랩'을 만들어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KB국민은행도 상황은 비슷하다. KB금융지주 주도로 혁신기업 전용 펀드를 설립해 7000억 원을 운영 중이기 때문이다. 하나은행 역시 하나벤처투자를 통해 스타트업육성에 나선 상태며, 우리은행도 지난해 5000억 원 규모의 혁신성장 투자를 위한 펀드 조성에 나선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중기부가 스마트펀드를 통해 비대면·바이오·그린뉴딜 분야의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자금모집에 나서자 중복투자를 우려하고 있다는 게 금융권 분석이다. 

 

◇ 정책사업에 동원되는 금융권 '부글부글'

정부부처들의 금융권 동원령에 대한 반발도 이번 스마트펀드 불참의 배경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중기부를 포함해 정부부처들이 새로운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금융권에 손을 벌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진행 중인 성장사다리펀드와 은행권 일자리펀드 등은 사실상 은행권이 출자하면서 자금이 마련됐다. 이밖에도 정부부처별로 다양한 정책펀드를 내놓았는데, 대부분 은행들이 자금줄 역할을 맡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은행들의 불만은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금융권 일각에선 은행들이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에 서운한 마음을 이번 정책펀드 불참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가 스타트업 육성을 기치로 규제완화 정책에 나서면서 대표적인 규제산업인 금융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고, 이로 인해 기존 금융사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세리 바즈인터내셔널 대표(오른쪽)가 지난달 20일 ‘디지털강국을 향한 풀스윙 스마트대한민국펀드 출범식’에서 명예 출자자 출자 약정금을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에게 전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중소벤처기업부

실제 금융당국은 지난달 '디지털 금융 신사업 육성' 정책을 통해 종합지급결제 대행사업자와 지정대리인 제도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사실상 핀테크 업체들과 대형 ICT 업체들에게 금융업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만들어줬다는 게 금융권 반응이다. 

4일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미 정부의 정책펀드에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의 자금이 상당부분 들어간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도 금융권의 규제완화 요청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금융권에 자금을 요청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이번 스마트펀드를 통해 터져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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