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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펀드 손떼면서 사무소는 더 세우는 해외운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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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간자산운용이 국내 펀드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하자 국민연금, 한국투자공사(KIC) 등 국내 대표 연기금이 JP모간자산운용에 맡긴 투자금 회수를 고심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 발을 빼면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기여도가 그만큼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JP모간자산운용의 이탈을 두고 일각에선 국내 금융산업의 열악함을 보여주는 현주소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KIC 등은 국내 시장 철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JP모간자산운용에 맡긴 해외 위탁운용자산 회수 여부를 두고 고심 중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해외 위탁운용사 선정에 있어 한국 및 국민연금에 대한 기여도라는 측면에서 '대고객 서비스'가 중요한 요소"라며 "JP모간자산운용의 향후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올해 상반기 말 현재 해외 주식만 98조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 대한 기여도가 떨어지면 JP모간자산운용이 이 같은 대형 고객을 잃을 수 있다는 얘기다.

KIC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KIC 관계자는 "해외 위탁운용사 선정 기준에 국내 법인의 철수 또는 매각 계획이 없다는 조항이 있다"며 "JP모간자산운용의 향후 움직임에 따라 위탁자산 회수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KIC는 올해 초 JP모간자산운용을 글로벌 채권 위탁운용사로 선정해 2억달러(약 2300억원)를 맡긴 바 있다. JP모간자산운용이 국내에 현지 법인을 갖고 있는 덕분에 '가산점'을 받은 덕분이다.

국내 대표 연기금·국부펀드인 국민연금과 KIC는 국내 금융 선진화를 도모하고 고용 창출을 위해 국내에서 활발히 영업하는 해외 운용사에 가점을 부여하는 등 위탁운용사 선정 때 혜택을 주고 있다. 해외 운용사들 역량이 엇비슷한 상황에서 가점은 당락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해 JP모간자산운용은 전날 "기관투자가 등을 대상으로 한 투자 자문업은 계속 영위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 하나금융그룹과 합작해 설립한 하나UBS자산운용 지분을 매각해 한국 시장을 떠난 UBS 역시 "한국은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큰 기관투자가 시장으로, UBS자산운용이 아시아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며 국내 사무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돈이 되는' 국내 연기금만 상대해 '단물'을 빨아먹겠다는 해외 운용사 처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형 연기금 관계자는 "국내에 진출한 해외 운용사에 가점을 주는 이유는 국내에 다양한 펀드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인력 고용을 통한 금융노하우 전수로 국내 금융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함"이라며 "덩치에 걸맞지 않게 소수의 인력만 남겨 명목상 사무소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꼼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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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최근 해외 운용사의 잇단 이탈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JP모간자산운용은 지난해 말 기준 당기순손실 46억원을 기록해 금융투자협회 등록 국내 진출 자산운용사 중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국내 펀드 시장이 수익을 내기 어려운 '천수답' 구조이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해외 자산운용사의 국내 펀드 순자산 규모는 58조1000억원이다. 해외 자산운용사의 당기순이익은 121억원이며 현지 법인 24개사 중 10개사가 손실을 내 적자 해외 자산운용사 비중이 40%를 넘어섰다. 특히 적자를 보인 해외 자산운용사 중 일부는 2010년부터 최근까지 여러 해 동안 적자가 지속되면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해외 자산운용사들이 국내에서 기를 펴지 못한 것은 "불합리한 세금제도 때문"이라는 주장도 많다. 해외 자산운용사들의 주력 상품인 해외 펀드가 국내 펀드에 비해 세제상 불리해 고액자산가들의 자금 유치가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개인투자자들은 해외 펀드 투자 시 매매차익과 환차익에 대해 15.4%의 세금을 내야 한다. 또 이를 통해 벌어들인 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돼 최대 41.8%의 세금을 내야 한다. 해외 자산운용사들은 줄곧 이 2000만원이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해외 펀드에 1억원을 투자해 20% 이상 수익이 나면 소득이 2000만원을 넘어가는데 누가 수억 원의 고액을 투자하겠느냐는 얘기다. 아니면 해외 주식 직접 투자나 ETF 투자처럼 분리과세를 적용해 달라는 게 해외 자산운용사들의 요구였지만 계속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각각 당기순손실 15억원과 4000만원을 기록한 피델리티자산운용과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자산운용 역시 국내 사업을 접을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은 삼성자산운용과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해 돌파구를 찾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최근 중국, 인도 등 아시아 대국이 눈부신 경제성장세를 나타냄에 따라 그만큼 아시아 역내 시장에서 한국의 중요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해외 자산운용사의 국내 진입 건수는 2010년 말 22개에서 2017년 3월말 현재 27개로, 7년간 겨우 5개사가 신규 진입하는 데 그쳤다. 해외 대형 연기금 관계자는 "최근 경제성장 속도가 빨라지며 투자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인도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며 "한국 사무소보다는 명백히 인도 사무소 설치가 급선무"라고 말했다.

[한우람 기자 / 홍장원 기자 / 김효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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