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투자 설 자리 좁아지는 벤처캐피탈
입력 2017.11.24 07:00|수정 2017.11.27 09:33
    은행·공제회에 일반 기업까지…영화 투자 눈독
    독특한 투자구조·곳간 풍부한 드라마 제작사
    영화·드라마 등 문화콘텐츠 투자 접는 곳도 등장
    • 콘텐츠 투자 시장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하던 벤처캐피탈(VC) 업체들의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은행·공제회는 물론 기업들까지 잇따라 영화 투자 시장에 뛰어들며 경쟁이 치열해졌다.

      콘텐츠 시장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드라마는 독특한 투자 구조 등으로 인해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벤처캐피탈 업체들의 콘텐츠 투자 문은 더 좁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근 벤처 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콘텐츠 투자 시장 지형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기존에 영화 투자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시중은행·공제회·기업들까지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굳이 벤처캐피탈 업체로부터 투자금을 유치 받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벤처캐피탈 업체들이 집행한 전체 신규 투자 가운데 영화 등 문화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고 있다.

    • 올해 초 우리은행은 600억원 규모 영화 펀드를 만들었다. 은행권에서 처음 영화 투자를 시작한 IBK기업은행도 올해 문화콘텐츠 투자금을 대폭 늘렸다. 대체 투자처를 찾고 있는 연기금·공제회 등도 영화 투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식객·추격자에 투자한 행정공제회와 CJ E&M과 영화 펀드를 만든 교직원공제회가 대표적이다.

      인터파크·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등 일반 기업들도 잇따라 영화 투자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16년 처음으로 영화 투자에 나선 코바코는 쇼박스가 배급하는 영화에 400억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었다. 지난해 코바코는 검사외전·럭키에 투자하며 짭짤한 수익을 거뒀다.

      복수의 벤처캐피탈 업체 운용역은 "영화에 투자하겠다는 곳이 많아지면서 원하는 영화에 투자하지 못하거나 하더라도 당초 제시했던 금액보다 적은 금액을 투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작년 개봉작 부산행·동주 등이 대표적"이라고 토로했다.

      워너브라더스의 밀정, 20세기폭스의 곡성 등 글로벌 투자배급사가 제작비 대부분을 직접 투자하는 작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비교적 적은 금액을 다수의 투자사와 클럽 딜(club deal) 방식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탈과 은행 등 기존 영화 투자자가 들어갈 여지가 줄어든 셈이다.

      한 벤처 투자 업계 관계자는 "제작사와 배급사 입장에선 소액씩 여러 곳이 투자해 복잡해지는 것보다 한 번에 대규모 투자금을 받아 제작하는 게 편하다"며 "의사 결정을 빠르게 하지 않으면 적은 금액을 투자할 기회마저 없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콘텐츠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는 드라마에서도 투자자로 이름을 올리기 쉽지만은 않다. ▲독특한 투자구조와 ▲자본력을 갖춘 방송사·제작사가 제작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향후 2~3년 동안 제작되는 작품은 과거 대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여기에 참여할 수 있는 투자자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통상 제작사들은 드라마 제작비의 60~70%를 방송국이 지급하는 방영권료로 충당한다. 전체 제작비 가운데 30%를 외부 투자자가 담당하는 셈인데 전체 제작비(모수)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제작사와 투자자 간 이견이 적지 않다. 사실상 방영권료는 투자금이 아닌 선급금 성격이 짙다는 게 투자업계 입장이다. 반면 제작사는 선급금이 아닌 투자금으로 보는 게 맞다고 보고 있다.

      한 벤처캐피탈 업체 운용역은 "작품마다 제작비의 일정 부분을 투자하는 프로젝트 방식이 일반적"이라며 "지분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투자한다고 할 때 전체 제작비를 몇으로 두느냐에 따라 투자금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제작사는 되도록 모수(전체 제작비)를 크게 두려고 하는 등 투자 구조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투자금 집행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과거와 달리 드라마 제작사가 굳이 외부 투자를 받지 않아도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도 영향을 줬다. 방송사의 드라마 편성 시간이 늘면서 제작사들은 좀 더 원활하게 방송사와 방영권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됐다. 제작비 확보 측면에서 숨통이 트였다는 것이다. 굳이 힘들게 외부 투자자를 유치할 이유가 없어졌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방송사들은 제작사가 제시한 제작비보다 적게는 5억원에서 많게는 50억원을 더 얹어주고 있다. 일부 제작사는 엔터테인먼트사와 공동 제작 형태로 드라마를 제작하며 캐스팅과 제작비를 한번에 해결하고 있다. 스튜디오드래곤이 전지현 씨의 소속사 문화창고와 공동제작한 푸른 바다의 전설과 YG엔터테인먼트와 미국 NBC유니버셜이 공동제작한 보보경심:려 등이 대표적이다.

      다른 벤처캐피탈 업체 운용역은 "영화 투자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이 늘어나면서 드라마로 눈을 돌리고 있다"면서도 "영화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콘텐츠 펀드는 꽤 있지만 드라마를 주목적으로 둔 펀드는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투자 경험이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어 "영화에서도 주도권이 점차 약화되고 있고, 새로 떠오르는 드라마에서도 선제적으로 주도권을 잡기가 쉽지 않아 벤처캐피탈 업체 중에선 문화콘텐츠 투자 비중을 줄이는 곳도 적지 않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