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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자본시장 빅데이터 선두주자` 김군호 코넥스협회장(에프앤가이드 대표)

홍장원,박윤구 기자
홍장원,박윤구 기자
홍장원,박윤구 기자
입력 : 
2018-02-18 17:35:49
수정 : 
2018-02-18 21: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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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투자에 혜택은커녕 세금만…시대 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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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한국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였다.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으로 일하던 김군호는 참을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1986년부터 10년 넘게 증권사 애널리스트 생활을 하면서 시장을 분석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나라가 망하느냐 하는 위기가 닥친 순간을 앞두고 진실을 내다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그를 절망하게 했다. 멀쩡하다고 생각했던 나라가 사실은 곪고 병들어 있었는데 아무도 진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데이터 중요성을 깊게 체감한다. 2년 뒤 삼성그룹이 신규 사업으로 금융 데이터 사내벤처를 시작한다고 발표하자 그는 안정된 증권사 자리를 박차고 사표를 쓴다. 2000년부터 에프앤가이드를 이끌고 있는 김군호 대표(56) 얘기다. "삼성그룹이 초기 자본금 60억원을 대고 금융 데이터를 모아 부가가치를 만드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했어요. 기회는 이때다 싶었습니다. 돈과 직결되는 데이터가 쌓이면 분명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확신이 너무 커서인지 퇴사할 때 겁이 나지도 않더군요."

그는 증권사 리포트를 온라인 공간에 차곡차곡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보고서를 분석해 분기 실적 전망치를 내놓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을 예측해 트렌드를 전망했다. 설립 첫해부터 매출 15억원을 올렸다. 하지만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많았고 자본금 60억원은 5년여 만에 바닥났다.

삼성그룹은 "사업 규모가 삼성이 직접 하기에는 너무 작다. 적당한 상대가 있으면 넘기겠다"고 선언해놓은 상태였다. 마침 애널리스트 시절 친분을 맺었던 기계업체 화천이 나서 지분 49%를 인수하기로 했다. 김 대표도 직접 자금 수억 원을 태워 2대 주주(16%)자리에 올랐다. 회사가 안정되고 일감이 늘면서 이제 에프앤가이드는 한 해 100억원 가까운 매출을 내며 10억원 넘게 순이익을 내는 알짜 회사가 됐다.

에프앤가이드의 성공 스토리는 적잖은 의미가 있다. 한국형 빅데이터 사업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측면에서 복기할 것이 많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자본시장 빅데이터 선두 주자라 할 만하다. "2000년 당시 외국인들은 선진 금융기법으로 무장해 한국 주식시장에서 돈을 버는데, 한국인들은 지라시에 의존해 종목을 사곤 했어요. 에프앤가이드 등장으로 누구나 손쉽게 주식 정보를 접하고 분석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리게 됐죠." 그는 사업 초기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한국거래소에 보관된 종이로 된 보고서를 트럭으로 나르며 자료 수집에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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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연기금, 자산운용사, 상장회사, 대학교를 비롯해 1500개 넘는 기관이 에프앤가이드에 접속해 투자전략을 짜고 논문을 쓴다. 치열했던 막노동(노가다)의 순간이 모여 에프앤가이드를 데이터 인프라스트럭처 개척자로 이끌었다. 지난해 말에는 신한은행을 상대로 자체 개발한 대출 조기 연체 시스템을 납품하기도 했다. 시장에 흩어져 있는 무수한 데이터를 가공해 어떤 변수가 연체율과 깊게 관련되었는지를 파악한 뒤 로봇이 사전에 이를 경고해주는 장치다. 단순히 증권 분야 데이터 강자를 넘어 시장 전반을 다루는 역량을 두루 키운 것이다.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김 대표의 호흡은 더 가빠졌다. 주식시장 패러다임이 펀드매니저가 종목을 골라 상품을 만드는 액티브 시대에서 지수를 따라가며 돈을 태우는 패시브 시대로 넘어갔다. 다양한 수요를 반영하는 지수를 바라는 투자자 목소리가 늘고 있다.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중 25%가 이 회사가 만드는 지수를 추종할 정도로 에프앤가이드는 이 분야 강자다. 앞으로 헤지펀드나 부동산 시장 경향까지 반영한 새로운 지수를 만들고 싶다는 게 김 대표 생각이다.

"기업 지배구조와 사회 책임이 강조되면서 제대로 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지수를 만들겠다는 욕심도 큽니다. 전 세계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들이 ESG 투자를 늘리는데, 한국에도 대표 지수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2013년 7월 코넥스(KONEX) 시장에 회사를 상장했다. 이후 코넥스상장기업협회장을 맡고 있다. 코넥스를 놓고도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창업 생태계 젖줄을 만들 요량으로 코넥스가 탄생했는데 제 역할을 못해 아쉽다고 했다. 일평균 거래대금이 10억원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쪼그라들어 시장으로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넥스 시장에 투자하려면 예탁금을 예치해야 하는데 이것부터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억원씩이나 투자하는 사람이 뭐하러 코넥스에 들어오겠습니까. 거래를 막는 역할만 할 뿐이지요. 거래가 안 되니 주가에 대한 신뢰가 없고, 그러니 거래가 더 안 되는 악순환에 빠진 것입니다." 지분 4% 이상을 보유하면 매각 시 양도소득세를 내는 규정도 바꿔야 한다고 했다. "모험자본에 과감히 투자하는데 세제 혜택은 못 줄망정 세금을 더 걷어가면 말이 됩니까. 코넥스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종합 대책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는 "정부가 창업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코스닥 시장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코넥스 시장에 관심을 덜 가지면 안 된다"며 "거래소 가장 밑단에 있는 코넥스 시장을 활성화하면 온기가 코스닥까지 저절로 퍼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코스닥 시장 살리기'에 나선 탓에 코넥스가 불이익을 보면 안 된다는 얘기다. 정부는 벤처기업의 코스닥 직상장을 유도하기 위해 상장 요건을 많이 낮춘 상황이다. 지난달 금융당국이 자본잠식 기업도 상장할 수 있는 것을 골자로 한 '코스닥 활성화 정책'을 발표한 게 대표 사례다. 성장성 있는 적자 기업에 상장 기회를 부여하는 '테슬라 요건'이 강화되면 상대적으로 코넥스에 대한 관심은 줄어든다. 김 대표는 "코넥스 시장은 벤처기업이 코스닥으로 가기 전에 시장에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중요한 길목이 될 수 있다"며 "힘들게 자리 잡은 코넥스 시장의 불씨를 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넥스 시장에서 검증받은 상장기업은 코스닥 시장에 가더라도 주가가 단기 급락하는 등 부작용을 겪을 위험이 현저히 낮아진다.

김 대표는 코넥스 시장이 위험자본 투자라는 벤처 생태계 전반을 부양할 수 있는 힘을 갖췄다고 평가한다. 모험자본이 과감히 코넥스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의 근간을 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위험이 높아도 보상이 따르면 돈이 들어와요.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은 창업 생태계입니다. 시장 확산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가 풀리면 시장은 제자리를 잡죠. 데이터는 그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 He is…

△1961년 대구 출생 △1980년 충암고 졸업 △1987년 홍익대 경제학과 졸업 △1991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졸업 △1993년 고려투자자문 운용역 △1995년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 △2000년 에프앤가이드 대표 △2012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 외부 자문위원 △2012년 한국회계학회 부회장 △2014년 코넥스협회장 △2017년 사학연금 기금운용자문위원

[홍장원 기자 / 박윤구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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